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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종가, 시대를 넘다] ② 삶의 이정표, 명문가의 '가훈(家訓)'
명가의 가훈,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의 나침반
민족의 대명절을 맞아 한자리에 모여 앉은 화목한 가정을 떠올린다. 명절풍속도가 현대까지 이어진 것은 지혜의 대물림 때문이다. 동사고금의 명문가는 가문마다 특별한 가훈이 존재하고 후손들이 가훈 실천에 매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가훈은 단순히 집안의 규율을 넘어, 격동의 역사 속에서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제시하는 '삶의 나침반'이자 가문의 정체성을 지키는 힘이었다. 2회 '남도종가 시대를 넘다' 기획에서는 남도 명문가들이 목 온라인야마토게임 숨처럼 지켜온 가훈과 그 속에 깃든 실천적 삶을 조명한다.
해동공자 최충의 '계자이시'
천년 가문 전통: 고려·조선 대대로 실천고려시대 해동공자 최충(986~1068)이 두 아들에게 남긴 '계이자 릴게임몰메가 시'의 한 구절이다."집안대대로 좋은 물건은 없으나귀중한 보물만은 간직해 왔다.문장을 비단으로 여겼고덕행이 곧 보석이니라.오늘날 서로에게 이르는 말을훗날 부디 잊지 말아라.그러면 나라에 귀중히 쓰이게 되며대대로 더욱 번창하리라."-계이자시(戒二子詩) 중에서-
최충은 혁거세를 키운 돌산 고허촌장 소벌도리가 신라 건국 후 릴게임추천 '최(崔)'를 성으로 받았다는 득성 설화의 가문 해주최씨를 중흥시킨 인물로서 최초의 사학인 9재학당을 설립한 동방 유학의 비조다. 가문은 최유선(1010~1068), 최만리(?~1445), 최우(1543~1613), 최유건 등 청백리와 공신을 배출했다. 해주최씨 최각종가는 강진 군동면 신기마을에 세거하며 선조의 가르침을 1천년 동안 지켜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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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훈의 효시 이천서씨 서릉의 '거가10훈'
인간 도리의 근본: 800년 역사의 '가훈 효시'우리나라 가훈의 효시는 고려사와 세종실록지리자에 기록된 서릉 '거가10훈(居家十訓, 1257년)'이다. 가문 바다이야기오리지널 11세 서릉은 지극한 효성으로 고려 고종으로부터 '절효(節孝)'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절효공파의 그가 남긴 10가지 가르침은 19세대를 이어 전승되고 있다.
'거가10훈'(1257년)은 부식삼강(扶植三綱 삼강을 바로 세워라), 돈서오륜(焞敍五倫 오륜을 돈독히 펴라), 관이어하(寬以御下 아랫사람을 너그럽게 대하라), 예이사상(禮以事上 윗사람은 예로서 대하라), 임상치애(臨喪致哀 상을 당하거든 슬픔을 다하라), 당제치경(當祭致敬 제사는 경건하게 모셔라), 지심이공(持心以公 마음은 항상 공평하게 가져라), 처사이의(處事以義 일처리는 정의롭게 하라), 교자이정(敎子以正 자식은 바르게 가르쳐라), 대인이서(待人以恕 다른사람은 용서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등 10가지 덕목을 담고 있다.
이천서씨는 신라 말 아간을 지낸 서신일을 시조로 모신다. 서신일이 사냥꾼에 쫓기는 사슴을 구해준 일로 꿈을 꾸었는데 신인이 나타나 감사를 표하며 자손의 영달이 있을 것을 예언했고, 그는 나이 80에 아들 서필(901~965)을 낳았으며, 서필과 그 아들 서희, 그 아들 서눌까지 3대가 재상이 되었다고 '고려사 열전 서희편'에 전한다.
서릉(徐稜)은 엄동설한에 위독한 어머니의 약으로 쓸 개구리를 구하지 못해 통곡했는데,. 이때 나무 아래 솥단지로 산 개구리가 떨어지는 이변이 일어났고, 이를 사용해 등창이 나으니 세상은 '하늘이 감동한 효성'이라 칭송했으며, 조정은 정려를 내리고 장성 성덕마을을 식읍으로 하사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삼강행실도 등에도 그 덕행이 기록됐다. 현재 서릉을 파조로 한 절효공파가 무안, 장성 등지에서 가문을 잇고 있다.
미안종가 앞 연못의 모현관
학문과 실천: 앎을 삶으로 증명하다담양 선산류씨 미암종가의 유희춘(1513~1577)은 '미암일기'(보물 제260호)를 통해 가훈을 전했다. 류희춘은 류계린의 아들로 해남에서 태어나 담양 홍주송씨와의 혼맥으로 담양 대덕에 문절공파 종가를 열었다. 류희춘은 성리학자인 부친에게서 가학을 배우고, 최산두·김안국에게서 도학을 공부해 신진사류로서 개혁정치사상을 실천한 문신이자 학자다.
미암집 권4에는 '십훈(十訓)'으로 기상(氣像)·질욕(窒慾)·사친(事親)·제가(齊家)·수신(守身)·처사(處事)·지인(知人)·접물(接物)·계사회천(戒仕誨遷)·문학(文學) 등이 기록됐으며, 공평과 절개, 용기와 신의 등 실천 방법도 가르치고 있다. 그가 동의보감의 명의 허준(1539~1615)을 발탁한 것이나 해동 18현에 오른 하서 김인후와 오래 교유한 데에는가훈과 같은 '지인(知人)' 실천이 있었다.
장성 울산김씨 하서종가의 김인후(1510~1560)는 '성경(誠敬)'을 평생의 지표로 삼았다. 가문이 보존한 필암서원(세계유산) 하서유묵(보물 제583호) 에는 '博學之(박학지) 審問之(심문지) 愼思之(신사지) 明辨之(명변지) 篤行之(독행지)'라는 중용의 내용 중 학문하는 방법을 가훈 '5교(五敎)'로 전승하고 있다.
나주 밀양박씨 청재공파 남파고택 안채
청렴과 의행: 시대를 깨운 노블레스 오블리주나주 밀양박씨 청재공파 남파고택 가문에서는 "수전노가 되지 말고 공익에 쾌척하라"는 가르침을 지켜왔다. 신라 경명왕의 제1왕자 박언침(밀성대군)을 중시조로, 16세인 고려 청백리 박현을 중조로 모시고 고려말 두문동72현 박침(1341~1399)의 손자 박심문(1408~1456)이 청재공파를 열었다. 그가 김종서의 종사관으로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하고 음독 순절했고 아들 박세부와 손자 박용이 각각 나주, 진도에 입향해 세거하고 있다.
박승희(1814~1895)와 박성호(1838~1886) 대에 이르러 근대적 농업경영으로 큰 부를 쌓았다. 이들 부자는 재배·저장·가공·판매까지 가능한 팥·콩 작물을 경작해 수익을 극대화하는가 하면, 소가 없는 농가에 소를 대여하는 우도경영을 도입함으로써 나주평야의 손꼽히는 부자가 된다. 씨앗과 송아지를 나눔으로 구휼에 앞장섰고, 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된 통학열차 내 충돌의 주인공이 박기옥이며, 그의 사촌인 박준채(1914~2001), 박공근, 박동희는 옥고를 치르고 훗날 건국훈장과 건국포장을 받았다.
영광 전주이씨 양도공종가에서는 대대로 내려오는 '계자명' 가훈을 19대 종손 이의갑이 병풍에 새김으로써 본보기가 되어 종가 후손들이 첨렴과 우국충정, 정의수호를 실천하도록 이끌었다.
'계자명'은 청렴과 우국충정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헤이그 밀사 이준 열사, 순국지사 이홍섭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며 가훈이 곧 구국의 행동으로 이어졌음을 증명했다.
종택솟을대문(효자 이상호가 1713년 하사받은 효자정려를 대문으로 사용 있다)
인류유산을 보존한 지혜: 세대가 함께하는 화합고매하고 격조 높은 한류문화의 진수를 증명하며, 세계무대에 한국전통문화를 알리는 선구적인 가문이 장흥고씨 양진재 종가다. 가문은 '가화만사성'을 최우선으로 한다. 370여 년간 이어온 씨간장의 맛처럼, 가문의 화합이 곧 마을과 사회의 안녕으로 이어진다는 신념을 지키고 있다.
이는 '한국의 장담그기 문화'를 유네스코세계무형유산에 등재시키는 쾌거의 주역이 됐다. 종부 기순도명인과 그 아들 고훈국씨는 370여년 종가 종부를 통해 대대로 전수된 씨간장과 된장·간장 제조법을 토대로 죽염장 등을 개발하고 1만평 종가터에서 장류사업을 시작했다. 전통방식을 고수하면서도 딸기고추장, 장담그기키트 등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소량 판매하는 발효식품들은 유럽의 유명백화점에 판매되어 인기를 얻었다.
어머니와 아들딸 세가족의 화합이 만들어낸 현대판 '법고창신'이다. 2024년 12월 파라과이에서 열린 제19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는 현장에 환호하는 한국 대표단에는 양진재종가 종부인 어머니와 아들이 나란히 함께 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가훈 그 자체의 장면이었다.
양진재종가 마당에서 장담그기를 배우는 셰프들
세종의 가르침: 석탄공종가 '가전충효 세수인경'광주 전의이씨 석탄공종가에는 세종대왕이 문신 이정간(1360~1439, 호 효정)에게 하사한 친필 가훈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이 현존한다. 이는 "가정에서는 나라에 충성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법도를 전승하고, 사회에서는 대대로 남에게 인자하고 공경하는 가풍을 지키도록 하라"는 의미다.
80세 아들 이정간이 100세 어머니를 위해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부린 지극한 효심에 감동한 세종의 찬사다. 이 가훈은 전의이씨 문중을 넘어 청백리와 충효를 지향하는 호남 사림의 보편적 가훈으로 확산되었다.
전의이씨 가문이 보존한 세종 어필 가훈 '가전충효 세수인경'
보물이 된 편지: 녹우당종가 '충헌공가훈'해남윤씨 어초은파 어초은종가에서 보존한 유산은 국가보물이 즐비해 마치 나라의 보물창고와 같다. 윤선도가 아들에게 남긴 '충헌공가훈'은 보물 제482호다. 윤선도 문헌 '윤고산 수적 관계문서'는 보물 제482호, 유일한 고려시대 노비문서 '지정14년 노비문서'도 보물 제483호다. 305매 목판 '고산유고 목판일괄'은 유형문화재 제219호다.
경기도에서 옮긴 사랑채가 있는 종택 '녹우당'이 사적 제167호다. 유훈 지켜 보호한 '비자나무숲'은 천연기념물 제241호다. 윤선도의 증손자 윤두서의 '자화상'은 국보다. 윤두서가 그린 동국여지지도는 보물 제481호다. '보길도 윤선도 유적'은 사적 제368호, 백포마을의 윤두서 고택은 중요민속자료 제232호다.
이런 공간과 전통건축이 가능했던 것은 윤효정(1476~1543, 호는 어초은)이 조선팔도 세금 못내 투옥된 백성의 세금을 세번 대납하고 옥문을 열어 구휼했기 때문이라 한다. '충헌공 가훈'은 윤선도가 아들에게 쓴 편지 형식이다. 종가관리, 재산분배, 노비관리, 검소한 생활과 예절 등을 기록했다. 수신(修身)과 근행(勤行)으로 적선(積善)하고 인자한 행실(仁行)을 제일의 급선무로 여겨야 한다고 했다.
녹우당(사적제167호)은 효종이 사부 윤선도에게 하사한 건물을 경기도에서 해남까지 이설해 재건축한 사랑채이다.
가훈 실천으로 역사는 흐른다 남도 종가의 가훈은 박제된 유산이 아니라, 수백 년을 흘러 내려온 '도덕적 자본'이다. 세종의 친필에서부터 고산의 문서에 이르기까지, 이 기록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갈등을 해결할 '공존의 지혜'를 제시한다. 가문의 전통을 지켜온 이들의 정성은 이제 K-컬처의 정신적 뿌리가 되어 미래 세대의 길을 밝히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명가의 가훈,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의 나침반
민족의 대명절을 맞아 한자리에 모여 앉은 화목한 가정을 떠올린다. 명절풍속도가 현대까지 이어진 것은 지혜의 대물림 때문이다. 동사고금의 명문가는 가문마다 특별한 가훈이 존재하고 후손들이 가훈 실천에 매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가훈은 단순히 집안의 규율을 넘어, 격동의 역사 속에서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제시하는 '삶의 나침반'이자 가문의 정체성을 지키는 힘이었다. 2회 '남도종가 시대를 넘다' 기획에서는 남도 명문가들이 목 온라인야마토게임 숨처럼 지켜온 가훈과 그 속에 깃든 실천적 삶을 조명한다.
해동공자 최충의 '계자이시'
천년 가문 전통: 고려·조선 대대로 실천고려시대 해동공자 최충(986~1068)이 두 아들에게 남긴 '계이자 릴게임몰메가 시'의 한 구절이다."집안대대로 좋은 물건은 없으나귀중한 보물만은 간직해 왔다.문장을 비단으로 여겼고덕행이 곧 보석이니라.오늘날 서로에게 이르는 말을훗날 부디 잊지 말아라.그러면 나라에 귀중히 쓰이게 되며대대로 더욱 번창하리라."-계이자시(戒二子詩) 중에서-
최충은 혁거세를 키운 돌산 고허촌장 소벌도리가 신라 건국 후 릴게임추천 '최(崔)'를 성으로 받았다는 득성 설화의 가문 해주최씨를 중흥시킨 인물로서 최초의 사학인 9재학당을 설립한 동방 유학의 비조다. 가문은 최유선(1010~1068), 최만리(?~1445), 최우(1543~1613), 최유건 등 청백리와 공신을 배출했다. 해주최씨 최각종가는 강진 군동면 신기마을에 세거하며 선조의 가르침을 1천년 동안 지켜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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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훈의 효시 이천서씨 서릉의 '거가10훈'
인간 도리의 근본: 800년 역사의 '가훈 효시'우리나라 가훈의 효시는 고려사와 세종실록지리자에 기록된 서릉 '거가10훈(居家十訓, 1257년)'이다. 가문 바다이야기오리지널 11세 서릉은 지극한 효성으로 고려 고종으로부터 '절효(節孝)'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절효공파의 그가 남긴 10가지 가르침은 19세대를 이어 전승되고 있다.
'거가10훈'(1257년)은 부식삼강(扶植三綱 삼강을 바로 세워라), 돈서오륜(焞敍五倫 오륜을 돈독히 펴라), 관이어하(寬以御下 아랫사람을 너그럽게 대하라), 예이사상(禮以事上 윗사람은 예로서 대하라), 임상치애(臨喪致哀 상을 당하거든 슬픔을 다하라), 당제치경(當祭致敬 제사는 경건하게 모셔라), 지심이공(持心以公 마음은 항상 공평하게 가져라), 처사이의(處事以義 일처리는 정의롭게 하라), 교자이정(敎子以正 자식은 바르게 가르쳐라), 대인이서(待人以恕 다른사람은 용서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등 10가지 덕목을 담고 있다.
이천서씨는 신라 말 아간을 지낸 서신일을 시조로 모신다. 서신일이 사냥꾼에 쫓기는 사슴을 구해준 일로 꿈을 꾸었는데 신인이 나타나 감사를 표하며 자손의 영달이 있을 것을 예언했고, 그는 나이 80에 아들 서필(901~965)을 낳았으며, 서필과 그 아들 서희, 그 아들 서눌까지 3대가 재상이 되었다고 '고려사 열전 서희편'에 전한다.
서릉(徐稜)은 엄동설한에 위독한 어머니의 약으로 쓸 개구리를 구하지 못해 통곡했는데,. 이때 나무 아래 솥단지로 산 개구리가 떨어지는 이변이 일어났고, 이를 사용해 등창이 나으니 세상은 '하늘이 감동한 효성'이라 칭송했으며, 조정은 정려를 내리고 장성 성덕마을을 식읍으로 하사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삼강행실도 등에도 그 덕행이 기록됐다. 현재 서릉을 파조로 한 절효공파가 무안, 장성 등지에서 가문을 잇고 있다.
미안종가 앞 연못의 모현관
학문과 실천: 앎을 삶으로 증명하다담양 선산류씨 미암종가의 유희춘(1513~1577)은 '미암일기'(보물 제260호)를 통해 가훈을 전했다. 류희춘은 류계린의 아들로 해남에서 태어나 담양 홍주송씨와의 혼맥으로 담양 대덕에 문절공파 종가를 열었다. 류희춘은 성리학자인 부친에게서 가학을 배우고, 최산두·김안국에게서 도학을 공부해 신진사류로서 개혁정치사상을 실천한 문신이자 학자다.
미암집 권4에는 '십훈(十訓)'으로 기상(氣像)·질욕(窒慾)·사친(事親)·제가(齊家)·수신(守身)·처사(處事)·지인(知人)·접물(接物)·계사회천(戒仕誨遷)·문학(文學) 등이 기록됐으며, 공평과 절개, 용기와 신의 등 실천 방법도 가르치고 있다. 그가 동의보감의 명의 허준(1539~1615)을 발탁한 것이나 해동 18현에 오른 하서 김인후와 오래 교유한 데에는가훈과 같은 '지인(知人)' 실천이 있었다.
장성 울산김씨 하서종가의 김인후(1510~1560)는 '성경(誠敬)'을 평생의 지표로 삼았다. 가문이 보존한 필암서원(세계유산) 하서유묵(보물 제583호) 에는 '博學之(박학지) 審問之(심문지) 愼思之(신사지) 明辨之(명변지) 篤行之(독행지)'라는 중용의 내용 중 학문하는 방법을 가훈 '5교(五敎)'로 전승하고 있다.
나주 밀양박씨 청재공파 남파고택 안채
청렴과 의행: 시대를 깨운 노블레스 오블리주나주 밀양박씨 청재공파 남파고택 가문에서는 "수전노가 되지 말고 공익에 쾌척하라"는 가르침을 지켜왔다. 신라 경명왕의 제1왕자 박언침(밀성대군)을 중시조로, 16세인 고려 청백리 박현을 중조로 모시고 고려말 두문동72현 박침(1341~1399)의 손자 박심문(1408~1456)이 청재공파를 열었다. 그가 김종서의 종사관으로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하고 음독 순절했고 아들 박세부와 손자 박용이 각각 나주, 진도에 입향해 세거하고 있다.
박승희(1814~1895)와 박성호(1838~1886) 대에 이르러 근대적 농업경영으로 큰 부를 쌓았다. 이들 부자는 재배·저장·가공·판매까지 가능한 팥·콩 작물을 경작해 수익을 극대화하는가 하면, 소가 없는 농가에 소를 대여하는 우도경영을 도입함으로써 나주평야의 손꼽히는 부자가 된다. 씨앗과 송아지를 나눔으로 구휼에 앞장섰고, 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된 통학열차 내 충돌의 주인공이 박기옥이며, 그의 사촌인 박준채(1914~2001), 박공근, 박동희는 옥고를 치르고 훗날 건국훈장과 건국포장을 받았다.
영광 전주이씨 양도공종가에서는 대대로 내려오는 '계자명' 가훈을 19대 종손 이의갑이 병풍에 새김으로써 본보기가 되어 종가 후손들이 첨렴과 우국충정, 정의수호를 실천하도록 이끌었다.
'계자명'은 청렴과 우국충정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헤이그 밀사 이준 열사, 순국지사 이홍섭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며 가훈이 곧 구국의 행동으로 이어졌음을 증명했다.
종택솟을대문(효자 이상호가 1713년 하사받은 효자정려를 대문으로 사용 있다)
인류유산을 보존한 지혜: 세대가 함께하는 화합고매하고 격조 높은 한류문화의 진수를 증명하며, 세계무대에 한국전통문화를 알리는 선구적인 가문이 장흥고씨 양진재 종가다. 가문은 '가화만사성'을 최우선으로 한다. 370여 년간 이어온 씨간장의 맛처럼, 가문의 화합이 곧 마을과 사회의 안녕으로 이어진다는 신념을 지키고 있다.
이는 '한국의 장담그기 문화'를 유네스코세계무형유산에 등재시키는 쾌거의 주역이 됐다. 종부 기순도명인과 그 아들 고훈국씨는 370여년 종가 종부를 통해 대대로 전수된 씨간장과 된장·간장 제조법을 토대로 죽염장 등을 개발하고 1만평 종가터에서 장류사업을 시작했다. 전통방식을 고수하면서도 딸기고추장, 장담그기키트 등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소량 판매하는 발효식품들은 유럽의 유명백화점에 판매되어 인기를 얻었다.
어머니와 아들딸 세가족의 화합이 만들어낸 현대판 '법고창신'이다. 2024년 12월 파라과이에서 열린 제19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는 현장에 환호하는 한국 대표단에는 양진재종가 종부인 어머니와 아들이 나란히 함께 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가훈 그 자체의 장면이었다.
양진재종가 마당에서 장담그기를 배우는 셰프들
세종의 가르침: 석탄공종가 '가전충효 세수인경'광주 전의이씨 석탄공종가에는 세종대왕이 문신 이정간(1360~1439, 호 효정)에게 하사한 친필 가훈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이 현존한다. 이는 "가정에서는 나라에 충성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법도를 전승하고, 사회에서는 대대로 남에게 인자하고 공경하는 가풍을 지키도록 하라"는 의미다.
80세 아들 이정간이 100세 어머니를 위해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부린 지극한 효심에 감동한 세종의 찬사다. 이 가훈은 전의이씨 문중을 넘어 청백리와 충효를 지향하는 호남 사림의 보편적 가훈으로 확산되었다.
전의이씨 가문이 보존한 세종 어필 가훈 '가전충효 세수인경'
보물이 된 편지: 녹우당종가 '충헌공가훈'해남윤씨 어초은파 어초은종가에서 보존한 유산은 국가보물이 즐비해 마치 나라의 보물창고와 같다. 윤선도가 아들에게 남긴 '충헌공가훈'은 보물 제482호다. 윤선도 문헌 '윤고산 수적 관계문서'는 보물 제482호, 유일한 고려시대 노비문서 '지정14년 노비문서'도 보물 제483호다. 305매 목판 '고산유고 목판일괄'은 유형문화재 제219호다.
경기도에서 옮긴 사랑채가 있는 종택 '녹우당'이 사적 제167호다. 유훈 지켜 보호한 '비자나무숲'은 천연기념물 제241호다. 윤선도의 증손자 윤두서의 '자화상'은 국보다. 윤두서가 그린 동국여지지도는 보물 제481호다. '보길도 윤선도 유적'은 사적 제368호, 백포마을의 윤두서 고택은 중요민속자료 제232호다.
이런 공간과 전통건축이 가능했던 것은 윤효정(1476~1543, 호는 어초은)이 조선팔도 세금 못내 투옥된 백성의 세금을 세번 대납하고 옥문을 열어 구휼했기 때문이라 한다. '충헌공 가훈'은 윤선도가 아들에게 쓴 편지 형식이다. 종가관리, 재산분배, 노비관리, 검소한 생활과 예절 등을 기록했다. 수신(修身)과 근행(勤行)으로 적선(積善)하고 인자한 행실(仁行)을 제일의 급선무로 여겨야 한다고 했다.
녹우당(사적제167호)은 효종이 사부 윤선도에게 하사한 건물을 경기도에서 해남까지 이설해 재건축한 사랑채이다.
가훈 실천으로 역사는 흐른다 남도 종가의 가훈은 박제된 유산이 아니라, 수백 년을 흘러 내려온 '도덕적 자본'이다. 세종의 친필에서부터 고산의 문서에 이르기까지, 이 기록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갈등을 해결할 '공존의 지혜'를 제시한다. 가문의 전통을 지켜온 이들의 정성은 이제 K-컬처의 정신적 뿌리가 되어 미래 세대의 길을 밝히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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