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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행정학과 83학번 김용신의 모습 그는 87년 2월 보안사에 연행되어 건대 항쟁의 배후관련 수사를 받으며 고문받고 40여 년 후유증에 고통받았다.
ⓒ 민병래
아버지 그곳은 어떤가요? 당신과 어머니의 하루가 궁금해요
2003년 임종을 지키며 당신을 껴안았던 날도 체취는 또렷했죠. 오랜 세월 소·돼지를 키우며 스민 쿰쿰한 내 그대로였습니다. 고추장찌개가 밥상에서 진한 냄새를 풍겨도 당신 머리털, 어깨, 손등에선 녀석들의 똥오줌 내가 머리를 들이밀었죠. 싫었어요. 당신이 미우니 허름한 장화며, 누더기가 된 셔츠, 목장갑을 헤집고 나온 엄지손가락을 모두 외면했죠. 장성한 맏아들이, 당신 가슴에 대 못 하나씩을 매일 박은 셈이네요.
당신을 많이 미워했어요
당신과 함께 한 시간이 힘들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당신과 마주할 생각을 하면 진저리가 났어요. 어쩌다 우린 원수가 되었을까요? 당신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닌데. 집을 떠나고 싶어도 자립하고 싶어도 난 보안사 송파분실의 악몽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지금도 기억나요. 당신이 돼지를 싣고 운전석에 올라 제게 조수석 문을 닫아달라고 했죠. 늪에 빠진 것도 아닌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손이 말을 안 들었어요. 햇빛마저 강렬해 눈도 뜨지 못했죠. 결국 당신이 내려서 조수석 문을 닫았지요.
"바보 같은 녀석 이제 문 하나도 못 닫냐?"라고 당신이 남겨놓은 음성 사이로 차 뒤꽁무니를 쳐다보다 주저앉았어요. 눈물이 흐르는데 엄마의 손길이 어깨에 닿더군요. 폭포수 같은 눈물이었죠. 내 몸 안에 어떻게 그 많은 눈물이 담겨 있었을까요.
내가 두 번짼가 세 번째로 입원한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다음 날, 당신은 "너도 나가서 돈 좀 벌어와"라고 소리 질렀죠. 야속했어요. 가슴에 멍이 들었어요.
당신의 구박보다 더 힘든 건 환청이었어요. 더운 여름, 당신이 축사의 열기까지 집으로 몰고 온 날이었어요. 어머니가 서둘러 차린 저녁상 앞에서 첫 숟가락을 뜨는데 "너는 집안의 수치고 저주다, 당장 죽어라"라는 고모님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차츰 커지더니 격렬한 울림이 머리 안에서 느껴졌어요. 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죠. 돌아가신 고모님의 음성에 사로잡혀 나는 숟가락을 든 채 꼼짝 못 했죠. 멀리 축사에서 소의 울음이 길게 이어졌고, 당신은 결국 밥상을 떠났어요. 어머님의 손길이 나의 손목에 닿고서야 헛소리에서 놓여났죠.
아픔은 1987년 2월의 마지막 일요일인 22일에 시작되었어요
1986년 12월 16일에 입대했죠. 자대인 2사단 포병대대로 갔을 때 주변은 헐벗은 소나무뿐이었어요. 잿빛 하늘은 찌푸렸다가 짜증 부리듯 눈을 퍼부었고, 칼바람이 목줄기에 파고들었죠. 입대 전 나는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83학번으로 구국학생동맹에 들어가 전두환과 맞서 싸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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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4학년 1학기에 휴학하고 그해 10월의 건대 항쟁 참가를 마지막으로 학교를 떠났습니다. 많은 동지가 실망했는데 감내할 수밖에 없었죠. 가슴에 옹이를 안고 들어갔으니, 세월만 빨리 가길 빌었어요.
그런데 입대 뒤 두 달여 만인 87년 2월 22일 보안부대로 끌려갔습니다. 사령부서빙고분실을 거쳐 송파분실로 갔지요. 6일째 되는 날, 그동안 수사받던 방을 나와 창고 같은 지하방으로 끌려갔어요. 파리한 형광등 몇 조각이 걸려있고, 냉기가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지난 5일 동안 잠을 못 자 몽롱하고 심한 매타작으로 몸은 허물어진 상태였죠. 나는 육중한 철제 의자에 앉혔습니다. 정면에는 소령 한 명이 나를 마주하고 그동안 나를 조사한 수사관이 좌우로 늘어서 있었습니다. 소령의 지시에 따라 누군가가 나의 엄지발가락과 손가락에 구리 전선을 감았어요. 그가 버튼을 누를 때마다 나의 발과 손이 튀었죠. 몸 안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터져 나가는 듯했습니다.
건대 항쟁의 배후를 대라고 소령은 악을 썼어요. 건대 항쟁 수사는 진즉에 끝났는데, 내가 연행되기 전인 1월 14일 박종철 열사가 고문받다 숨져 정세가 심상치 않으니, 보안사가 무언가 사건을 조작하려는 속셈으로 보였습니다. 이를 꽉 물고 몇 차례 버텼는데 소령이 비웃으며 또 다른 버튼을 눌렀죠. 갑자기 바닥이 꺼지며 철제의자가 지하로 내려갔어요. 나는 소리 질렀죠.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다 나의 잘못이니 뭐든지 말하겠다고. 위에서 찬물이 쏟아졌어요. 의자는 캄캄한 어둠 속으로 계속 내려갔고, 찬물은 멈추지 않았죠. 그때 정신을 잃었나 봐요. 그들이 작성한 진술서에 도장을 찍고서야 나는 송파분실을 벗어났어요.
▲ 김용신이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경찰보고서 김용신은 보안사에서 건대 항쟁 배후관련 수사를 ?받았다.
ⓒ 김용신제공
자대로 돌아와 알아챘죠,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는 걸
자대가 있는 원통으로 돌아오는 내내 눕고 싶었어요. 몽둥이찜질 때문에 온몸이 쑤시고 전기고문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무반 침상이 천국처럼 그립더군요. 그런데 부대에 도착하니 가깝던 선임이나 동기들이 차가운 눈빛만 보냈어요. 당황스러웠죠. 보직도 바뀌어 가장 힘든 전투포대로 가게 되었죠.
자대에 온 나는 보안사로 압송되기 전의 김용신이 아니었습니다. 헛소리하고 입을 헤벌린 채 멍하니 주변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변했죠. 선임은 나사가 풀렸다고 욕지기를 던지고 손찌검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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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생활을 보내던 어느 날, 막사 계단을 내려오는데 가까운 하늘에서 흰 날개를 지닌 천사가 성가를 불렀어요. 나는 빠져들어 쳐다봤죠. 고참의 외침에 정신을 차려보니 하늘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뿐인가요. 천둥 번개가 치던 날 나는 장대비 속으로 달려가 천둥이 치는 쪽을 향해 절을 했죠. 통일 지도자가 될 거라는 음성이 들리더군요.
그때 나는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걸 감지했죠. 두려웠어요. 주변에선 이런 나를 보고 '맛이 갔다, 도라이가 됐다'라고 비아냥거렸어요. 나의 굼뜬 행동을 빌미 삼아 선임은 단체 기합까지 줬으니, 내무반의 진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죽하면 인사계에서 의가사 제대 의견을 냈을까요. 나를 '산비둘기'라 부르며 관리하던 보안사는 칼같이 잘랐죠. "김용신이 살아서 나갈 줄 몰랐다"라는 대대 인사계의 말을 뒤로 하고, 나는 1989년 초 병영 문을 나섰습니다.
아버지! 전역하던 날 기억나세요. 당신이 환한 미소로 달려 나오셨죠. 어머니도 축사 문을 열고 뛰어오시고. 우리는 기뻐 부둥켜 안았는데 원망스럽네요. 송파분실에서 겪은 고통과 충격을 잠시라도 다스릴 시간이 있었다면, 나는 40여 년 세월을 정신병에 시달리지 않았겠죠. 치료가 절실한 때에 외려 자대에서 고통받았으니 중증 환자가 되어 당신 품에 안긴 것입니다.
어렵사리 1989년 3월 연세대 행정학과 4학년에 복학했는데 병세는 더 심해졌어요. 목련이 떨어지던 날, 정문을 지나는 데 언더우드관 너머에서 황제들이 무리를 지어 다가오더군요. 월계관이나 면류관을 썼고 침대 마차에 누운 여인도 보였죠. 아마 황후였나 봐요. 그들은 내가 온 세계를 구원할 것이라는 계시를 주었죠. 난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봤어요. 1학기 기말고사 답안지에는 그림을 그리고 말도 안 되는 문장을 늘어놓아 교수의 호출까지 받았어요.
나는 당신의 손에 이끌려 국립의료원으로 향했죠. 정신병이라면 수치로 여겨 쉬쉬하던 시절, 트라우마라는 말조차 없던 때이니, 당신과 나는 안개 속을 향해 걸어 들어간 셈이죠. 그때부터 '공인'된 나의 투병 생활이 시작된 거죠.
▲ 국립의료원의 김용신 진료기록 김용신은 보안사에서 건대 항쟁 배후관련 수사를받았다.
ⓒ 김용신제공
아버지 당신도 모르게 겪은 일이 참 많아요
내가 투병 과정에서 겪은 수많은 일, 당신도 모르는 사연이 많아요. 국립의료원의 치료를 받아도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어요. 어느 날, 제가 안양에 갈 일이 있었죠. 늦은 밤, "용신아 뛰어라, 뛰어"라고 하늘에서 계시가 들렸어요. 안양에서 서울까지 밤길을 달렸죠. 말씀이 내려온 길을 더럽히면 안 되기에 신발을 움켜쥐고 달렸어요. 무슨 힘으로 뛰었나 모르겠습니다. 마주친 사람들은 당황하며 헛웃음을 짓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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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도 오랜 원수였습니다. 이놈을 방 안에서 쫓아내느라 밤을 꼬박 새운 날이 많아요. 힘에 부쳐 어머니를 깨워 나방을 몰아내자고 하면, 어머니는 이미 떠나갔다고 하면서 등을 쓰다듬어주셨죠. 애초에 나방은 없었으니까요
이런 나를 견딜 수 없었어요. 1991년 봄 나는 결심했죠. 모든 방안을 고민하다 정신과 처방 약 한 달 치에다가 집에 있는 여러 약까지 한 무더기를 삼켰어요. "안녕히 계세요"라는 메모 한 줄만 남기고. 당신이 발견해 응급실로 갔죠. 구급차에서 나를 부여잡고 있던 당신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응급실을 나와 들어간 용인정신병원에서 3일 동안 손발이 묶여있었어요. 누운 채 밥을 먹고 똥오줌을 누었죠. 등이 배기고 엉치뼈가 쑤셔대듯 아팠죠. 퇴원해서 발작 증세는 다소 가라앉았지만, 병세는 차도가 없고 좋아졌다가 갑작스레 발작이 일어나는 쳇바퀴 세월이었어요.
특히 잠 못 이루는 밤이 괴로웠어요. 올 듯하면 멀어지고 쫓아가면 달아나고 미운 녀석이었죠. 온 밤을 서성이다 창문 밖이 희붐할 때 지쳐 누워도 눈은 말똥말똥했어요. 머리가 하얗게 불타는 느낌, 오직 소원은 하나, 잠, 잠, 잠이 들었으면 이었죠.
아마 불안했기 때문이었나 봐요. 잠자리에 누우면 온갖 생각이 달려들었죠. 송파분실의 어두운 방, 눈앞에 쌓인 진술서, 수사관의 비열한 웃음, 전기고문의 스위치, 스위치를 누르던 소령의 하얀 손. 부끄러웠어요. 물고문을 당할 때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내 모습이 떠나지 않았어요. 정문 돌파 투쟁을 할 때, 엄청난 최루탄 공세에도 물러서지 않던 내 기개는 사라졌죠. 발가벗은 채 수사관의 바짓단을 부여잡고 눈물짓던 수치스러움. 1987년 2월 22일이 또다시 불쑥 다가올까 심장은 언제나 콩콩대고 늘 주변을 두리번거렸어요.
일해보려고 자활하려고 몸부림도 쳐봤어요. 동생이 하는 컴퓨터 조립 일을 돕기도 하고, 의성에 내려가 학원 강사도 하고 연세대 민주동문회가 도와줘 보험 판매도 했죠(연세민주동문회는 1997년 내 상태가 악화했을 때 연희동의 '사랑이 꽃피는 마을'이라는 병원에 입원시키고 모든 치료비까지 감당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일 년 이상을 꾸준히 하지 못했어요. 트라우마는 내가 평온해지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게 싫었나 봐요. 더 깊게 몸으로 파고들어 굵은 뿌리를 내렸어요. 좋아지려고 하면 시샘하며 귀신과 악마를 번갈아 보냈죠. 외출했다 남양주의 집으로 들어가려면 버스에서 내려 1km 남짓을 걸어야 하잖아요. 등 뒤에서 귀신이 따라붙고 앞에서는 악마가 웃음을 짓더군요.
이런 나를 지켜보며 당신은 속병이 들었겠지요. 당신의 기쁨이고 자랑인 큰아들이 세상에 우뚝 설 줄 알았는데, 당신이 등 떠민 군대에서 반푼이 되어 돌아왔으니 속은 바짝 타들어 갔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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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당신의 잔소리와 걱정을 못 참아 소리 지르며 대들고 밥상을 들어 메치듯 일어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 연세대 행정학과 83학번 김용신의 모습 그는 87년 보안사에서 건대 항쟁 배후관련조사를 받으며 고문받았다.
ⓒ 민병래
건널목에서 만난 신비한 체험
아버지, 신비한 체험을 겪었어요. 2024년 여름, 보안사의 악행을 놓고 벌어진 재판에서 송파분실의 경험을 세세하게 진술했어요. 그 뒤 40여 년 가까운 후유증도 증언했죠. 나는 작은 새, 축사 옆 임시 건물의 한쪽 창고 방에서 웅크려 하루 내내 창문만 바라보는 작은 새. 창고 방을 나와도 어깨와 머리 위로 온통 창살이 그득해 날개를 못 펴는 작은 새라고 말했어요. 그날 서초동 법정을 나오는데 머리 위에 따라다니던 창살이 걷히더군요. 어디에도 막힘이 없었어요.
들뜬 마음으로 법원에서 동네로 돌아와 집 앞 건널목을 건너려는데, 맞은 편에 설핏 당신 모습이 보였어요. 조심해서 건너오라는 눈길을 보내더군요. 처음 입원한 용인정신병원에서 퇴원할 때 당신의 눈길이 그랬죠. 문득 예전의 행복이 기억났어요. 택시 운전을 하던 당신은 연세대 대운동장으로 합격자 발표를 보러 가, 내 이름을 확인하셨죠. 그날 당신은 승객의 요금을 안 받았다고 하셨어요. 또 기사 일을 그만두고 남양주에 목장을 마련해 나를 유학까지 시키겠다고 말씀하셨죠.
행복한 추억을 회상하니, 내 몸이 열리는 것 같았어요. 당신의 임종을 지키면서도 내려놓지 못한 납덩이가 스르륵 빠져나가더군요. 당신을 향한 모든 미움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당신이 내게 쏟았던 채찍 같은 고함이 사랑이었음을, 나가서 돈 벌어오라는 얘기가, 노동하면 병도 빨리 낫지 않을까 하는 애타는 마음이었음을, 오죽하면 당신이 (지금으로 치면 수천만 원이나 되는) 삼백만 원을 들여 굿까지 했을까요.
이제야 깨닫네요. 당신은 1983년 나이 마흔여덟에 모험을 시작했죠. 남양주에 땅을 빌려 가건물을 짓고 웃풍 속에서 겨우내 오들오들 떨며 소똥, 돼지똥과 씨름했죠. 당신의 인생은 무엇이었을까요? 당신의 걱정을 듣기 싫다고 자식놈이 밥상머리에 함께 앉지도 않았으니, 내가 지닌 쇳덩어리가 열 근이라면 당신은 백 근, 천 근을 가슴에 안고 산 셈이죠. 그 무게가 당신의 속을 갉아 먹었나 봐요. 어머니는 당신이 떠나고 스스로 삶을 내려놓으셨죠. 막 치매 증세가 나타날 때 어머니는 아픈 환자인 내게 짐이 되면 안 된다고 세상을 저버리셨어요. 결국 제가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의 삶을 비탈에 서게 한 거죠.
아버지 그 소령의 이름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 기쁜 일도 있어요. 2024년, 제2기 진실화해위에서 보안사에서 당한 고문이 인정받았고 민사 법정에서 국가 보상을 결정받았어요. 제가 쓴 진술서와 보안사가 작성한 수사보고서가 비밀창고에서 튀어나온 덕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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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저를 고문한 소령과 수사관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어요. 1987년 당시 보안사의 송파분실을 책임진 소령이 누구인지, 진실화해위원회라는 국가기구가 밝혀내지 못할 리는 없을 터인데, 부러 감췄을까요.
우리 가족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서라도 도대체 그들이 누구인지, 왜 그런 무도한 짓을 했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과 나는 잘못이 없는데 고통받은 건 당신과 나였으니까요. 이 과제와 씨름하려고요. 진실화해위 3기에 그 소령이 누구인지, 나를 고문한 수사관이 누구인지 진실을 규명해달라고 요청할 작정입니다.
올해는 <트라우마 해방일지>라는 책도 냈어요. 병마에 시달리고, 떠나지 않는 트라우마와 싸운 과정을 담은 책입니다. 지금도 불현듯 솟구치는 발작 상태를 벗 삼아 살아가려고 써나간 글이에요.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담았고요. 인쇄된 책을 보니 뿌듯했어요. 표지에 실린 사진은 연세대에서 함께 사진반 한 친구가 찍어주었는데 아주 마음에 들어요. 40여 년의 고단함이 잘 담긴 것 같아 흐뭇했어요.
▲ 연세대 행정과 83학번 김용신이 쓴 나의 트라우마해방일지 2026년 은빛기획에서 출간하였다.
ⓒ 김용신
올해 5월 16일에는 이틀에 걸쳐 광주 망월동 민주묘역을 다녀왔어요. 40년 만에 다시 찾으니 감개무량했지요. 그때 도청을 지켰던 소년의 무덤을 하나하나 찾아보았습니다. 외롭고 겁이 났겠죠. 계엄군이 밀어닥치면 자기 몸뚱이가 산산이 흩어질 터인데, 새벽이슬에 더욱 차가워진 총구를 부여잡고 지켜야 한다고, 벗어나선 안 된다고 자신을 다독거렸겠죠.
그날 저도 다시 다짐했어요. 소년병의 결기에는 못 미칠지라도, 떠나지 않는 병에 맞서겠노라고. 몸 깊은 곳에 똬리 틀고 있는 병마를 내가 이끌고 다니겠다고. 이 글을 쓰면서도 겁나요. 제가 앓고 있는 병이, 비 오는 밤 천둥처럼 닥칠지 모르는 병이니까요. 알코올 중독자가 잘 버티다가도 한 잔을 마시면 참아온 시간이 물거품 된다고 하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연락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올 녀석에게 더는 무릎 꿇으면 안 되니까요.
아버지 그곳은 어떤가요.
당신이 머무는 곳에는 물망초 향이 넉넉해
당신 몸의 퀴퀴함을 덜어내면 좋겠어요.
속병이 당신을 앗아갔으니
햅쌀을 갈아
산양의 젖을 넣고 끓인 죽을 자주 드시면 좋겠어요.
당신이 머무는 곳은 따뜻하길 바래요.
20년을 머무른 축사 옆, 가건물의 냉골이
당신을 병들게 했죠.
5월의 햇볕만큼 다사로운 기운이
당신과 어머니의 등을 언제나 감싸주길 바래요.
기억나나요.
정신병원에서 손발이 묶였을 때 바깥 공기를 마시고 싶었어요.
당신이 면회 와 커튼을 걷고 창문을 활짝 열었죠.
신선한 공기가 밀려들었어요.
숨을 깊게 들이마셨죠. 아, 생명의 숨이었어요.
창문을 등진 당신의 어둑한 얼굴에 잠깐 반짝임이 지나갔죠.
당신의 눈물이었을까요.
창고에서 튀어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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